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겼다.
그래도 헤어지기 아쉬운 지난 금요일 밤이었다. 죽고 못사는 애인사이도 아니고, 수십년 만에 만난 이산가족도 아니다. 목요일 저녁부터 이어진 술자리를 이튿날 새벽에야 마쳤는데,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또 술타령이다. 그래도 나름 이유는 있었다. 목요일은 친구와 둘이 가진 모처럼 만의 자리였고, 금요일은 친한 선배들을 대동한 친목의 술자리였으니까. 엄연히 따지면 술을 마실만한 그럴싸한 이유가 있었고, 뜻하지 않게 그 이유가 연달아 생긴 것 뿐이다. 맥없이 술독에 빠진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 중에 나만 아직 혼자다.
다들 애도 하나 둘씩 있고, 중학교니 초등학교니 하는 애들 성장 스토리를 안주거리로 삼기도 한다. 어렵사리 축복을 받은 터울 있는 선배는 내년에 있을 돌잔치 초대장을 벌써부터 뿌리고 다닌다. 여담인데, 터울의 사전적 의미는 안다. 그럴 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변명을 단다. 어찌됐든 그렇게 부러운 사람들에 둘러싸인 술자리여서 그랬는지, 어울리지 않게 풀이 죽어 버렸다. 없어도 있는 척, 틀려도 맞은 척, 터울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우기듯 허세를 부리는 내 모습이 온데 간데 없다.
그런 내 모습이 측은했던지 한 선배가 소개팅을 제의한다.
처제란다. 어림잡아 짐작해 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을 듯 하다. 그래서 고사한 것은 아니다. 당장 가정을 만들고 아이를 갖고 싶은 생각이 치밀지만, 인위적 만남은 지금껏 한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소개팅인지 선인지 분간할 수도 없다. 더욱이 혼자인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보니 썩 내키지 않는다. 마음을 써 주는 선배의 제의였지만, 고맙다는 말로 화제를 돌렸다. 이상적인 아내라고 생각하는 형수의 동생이라 끌리기는 하지만, 정작 요즘 내 고민은 그게 아니다.
그래서 선배들을 먼저 보내고 친구 녀석을 꼬득였다.
노친네들이 할 말이 뻔하기 때문이다. ‘까불지 마라. 혈기를 받아 줄 사회가 아니다’라는 말. 그리곤 위로를 할 테다. ‘괜히 어렵게 만들지 마라. 지금도 잘하고 있다’는 뻔하디 뻔한 말. 정답이다. 난 그게 싫다. 그래서 택시를 같이 타자는 선배 손을 뿌리치곤, 친구 녀석과 아직 불이 켜진 바를 찾아 들어갔다. 누구에게도 툭 터놓고 말하지 못할, 아니면 해서는 않될 이야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자정을 넘긴 그 시간에 까닭도 모르고 울컥한 심정을 억눌렀다가는 홧병이 제대로 걸릴 것 같았다.
친구는 가장 훌륭한 약이다.
속마음을 털어 놓기란 친구 앞이라고 쉬운 것은 아니다. 술기운을 빌릴 만큼 취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말하지 않으면 며칠이고 응어리가 맺혀 있을 내 마음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저런 말 같지 않은 말 들을 늘어놓았다. 괜히 시비도 걸어보고, 동정도 구해보고, 다시 본 모습으로 돌아와 실속 없는 잘난 체도 해 보고. 행여 공이 넘어갈까봐 꼭꼭 움켜쥐고 내 말만 늘어놓았다. 말을 하고 싶으면 나에게 발언권을 요청하고 말하라고 우기면서 말이다.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를 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중에서 -
한참을 떠들고 나서 결론을 내렸다.
‘고맙다’는 말이 그것이다. 가슴에 묵은 고민이야 그대로 남아있지만, 잠시 맺혔던 응어리를 말끔히 풀고 나니 시나브로 날이 밝아 온다. 그 녀석. 전날도 나 때문에 속 깨나 썩었을 텐데, 내색이 없다. 와이프를 잘 얻은 건지, 봉사를 열심히 하는 건지. 에이, 이 또한 부러움의 소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과 함께 산다. 부럽다. 그런데 나도 사람들이 정말 부러워할 한 가지가 있다. 난 친구가 있다. 난 이런 친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