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살면서 종종 개인적 성취 등으로 기뻐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종종 다른 사람들로 인해 행복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가령 오래 준비한 시험에 합격했을 때 순간이나마 기뻐 소리친다. 한 꺼풀만 벗겨보면 그 기쁨은 다른 사람들과 나눌 행복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축하받으며 즐거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누리는 행복은 순간적 기쁨보다 훨씬 오래간다. 결국 누군가가 느끼는 행복은 다른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행복을 누리고 또 기대하며 산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종종 다른 사람 때문에 힘이 빠지기도 한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때로는 실망하고, 또 때로는 아주 유치하게도 삐진다. 특히 상대에게 숨겨야 할 마음이 있다면, 상대의 평소와 다른 눈빛과 말투에 냉가슴을 앓고, 그래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가 있다. 무심한 상대에게 야속함을 느끼기도 하고, 그런 상대를 향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때로는 그 초라함이 자괴감이나 우울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명절과 같은 긴 연휴 동안 연락 한번 없는 그가 야속할 때가 있다. 사전이 정의한 야속함이란, ‘무정한 행동이나 그런 행동을 한 사람이 섭섭하게 여겨져 언짢다‘는 뜻이다. ’살았는지 죽었는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연휴는 잘 보내고 있는지 길이 막히지는 않았는지 기름진 명절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진 않았는지, 뭐 그런 따위가 너무 궁금해 괴로울 때 상대가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먼저 연락할 수 없는 벙어리 냉가슴인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연휴를 마치고 그가 돌아와 밝게 웃어 줄 때 그렇게 기쁘고 좋을 수가 없다. 길고 길었던 연휴는 달력에서 지워내고, 마치 어제의 다음날처럼 아무렇지 않게 웃는 그가 한편으로는 참 얄밉다가도, 그런 그가 있어 안도하고 다시 힘을 얻기도 한다. 누구는 속을 시꺼멓게 태웠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 잔뜩 심통이 나면서도, 그렇게 웃어주는 그가 고맙기도 하다. 그렇게 사람은 사람에 의해 힘을 얻기도 하고, 또 힘이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사람에 의한 것이므로,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면 힘 빠지는 일이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상처가 된 한 마디를 뱉은 상대의 입장에서, 실망을 준 상대에 대한 내 기대가 지나친 것은 아니었는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일에 괜한 투정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상대가 의도한 나쁜 짓이 아니었다면 굳이 그런 것으로 힘이 빠져도 되는 명분이 없는 것이다. 한숨 한번 내쉬고 잊거나 상대에 대한 나의 기대치를 낮추거나 스스로 더욱 성숙해지면 힘이 빠질 일이 줄게 된다.
정을 준 나는 그 사람이 세상에서 ‘유일한 한 사람’이지만, 그 사람에게 나는 ‘수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의미조차 없는 사람. 어쩌다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하고, 지나가면 다시 안 봐도 상관없는 사람. 같이 지내는 동안 얼굴 붉힐 필요 없고, 그럭저럭 지내다 남남이 될 사람. 형식적인 안부 인사를 하며 적당히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면 되는 사람. 이렇거나 저렇거나 별다른 의미 없는 수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
내게는 그가 ‘유일한 한 사람’이지만 그에게 나는 그런 수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일 때, 그로 인해 상처받고 실망하고 삐지거나, 서운함 내지 야속함 따위를 느끼는 것은 참 속 좁은 짓인 것이다. 그가 말이라도 걸어주면 고마운 거고, 그에게 뭐라도 바라는 것은 헛된 욕심이고. 그의 뒷모습이라도 기웃거릴 수 있어 좋은 거고, 그의 얼굴이 다른 사람을 향한다고 풀이 죽는 것은 쓸데없는 청승이고. 의도적으로 준 정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게 정을 준 자가 묵묵히 삭혀야 할 핸디캡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