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좋은 생각과 좋은 말만 하며 살고 싶다. 정말로 예전엔 대책도 근거도 없는 긍정적 성향을 문제로 여길 정도였다. 어쩌다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앞으로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기려고 이러나’ 했고, 안 좋은 일이 겹쳐서 닥치면 ‘삶의 보너스’라고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입이 찢어질 만큼 좋은 일은 아니더라도, 가끔은 술에 취해 푸념을 늘어놓아도, 자고 나면 언제나 기대에 찬 하루를 보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땐 그랬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입꼬리가 처진 얼굴이 참 밉다. 평생 달고 다닐 것만 같았던 왕자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점은 나쁘지 않은데, 거울을 보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다. 담배연기에 찌들어 거무스름해진 얼굴을 보면 ‘정말 내가 맞나’ 싶어 한 숨 지으며 담배를 피운다. 사람을 만나면 늘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는 그것을 ‘연륜이 있어 보인다, 진중하다’ 정도로 해석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름 아닌 ‘얼굴이 보기 안 좋다, 찌들었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TV에서 본 적이 있다. 두 개의 식빵 중 하나에는 좋은 말만 하고, 다른 하나에는 나쁜 말을 하면서 곰팡이가 피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신기한 차이가 있었다. 물을 얼리는 실험도 마찬가지였다. 하나에는 예쁘게 핀 곰팡이와 물의 결정이 보였는데, 다른 하나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식빵이나 물이 그런 것처럼 사람도 그렇다고 믿는다. 좋은 생각과 좋은 말을 많이 하면 멋지고 예뻐지고, 못된 생각과 못된 말만 일삼으면 얼굴도 그렇게 변한다.
그래서 항상 좋은 생각과 좋은 말만 하며 살고 싶은데, 그게 어려워진지 꽤 됐다. 전에는 그런 내 모습조차 몰랐다가, 이제라도 알게 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한동안 어떤 일 덕분에 웃을 수 있었고, 좋은 생각을 하고 싶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다만, 이제 그 일이 끝나고 나니 못된 생각 못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어 한숨만 푹푹 쉬고, 그 일 없이도 웃으며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문득 예전에 봤던 강아지 인형이 다시 떠올랐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누가 인형 스위치를 올렸는데, 숨이 넘어갈 것처럼 때굴때굴 구르며 웃는 모습에 덩달아 웃음이 터졌다. 인형 주인이 퇴사를 하면서 더 이상 그 인형의 웃음소리를 듣지 못하게 됐었다. 어디서 파는지 몰라 가끔 그 인형을 그리워만 하다가, 혹시 하는 마음에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다. 그리고 반가운 마음에 바로 주문을 했다. 내일이나 모래쯤이면 받을 수 있을 텐데, 나는 그 인형을 사무실 책상 위에 두고 보려고 한다.
아주 예전엔 ‘요즘 재밌냐?’는 인사말에 ‘당연하지’라고 대답을 했고, 언제부턴가 ‘어떻게 사는 게 재밌는건데?’라고 반문하다가, 이제는 ‘재미없어’라고 말한다. 상대방의 물음에 성심성의껏, 정말 재미가 없어서 그렇게 대답했을 뿐인데, 상대방은 무안해 하고 나는 미안해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길 레, 이렇게 사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내 못난 생각으로 주변사람까지 물들여선 안 되는데, 나는 계속 못된 짓을 일삼았으니, 죄가 많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앞으로 죄 짓지 말아야겠다 싶고, 마침 새해도 다가오고 해서 새해 계획으로 ‘좋은 생각하기’를 꼽았다. 그런데 새해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 바로 ‘지금’부터다. 최근 며칠 동안 수없이 다짐하고 다짐해도 잘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또 다짐하고 다짐한다. 내일이나 모래 쯤 받게 될 웃는 강아지 인형이 그래서 더욱 기다려진다. 간절히 원하는 일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피그말리온 효과. 간절히 원하는 모든 일이 반드시 이뤄지는 것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좋은 생각하기’는 꼭 이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