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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넘어 몇 해가 지났고, 며칠이 지나면 또 한 해가 지난다. 어렸을 땐 이 나이쯤 되면 모두 어른인 줄 알았는데, 과연 나는 어른인 건지 의심스럽다. 최근에 읽은 「청춘의 사운드」도 그렇고, 다시 읽는 「깍두기 삼십대」에도 ‘어른’을 말한다. 한 책은 굳이 애써 어른이 될 필요가 없다 했던 것 같고, 다른 한 책은 어른이 되어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건 난감하다고 한다. ‘인생의 깊은 깨달음까지는 아니어도, 결정도 척척 하며 꽤 그럴듯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던 30대.’(26쪽) 나는 그런 30대인가?

나는 30대가 되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 않았다.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 것이라는 확신이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는 게 그런 삶인지는 따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고 있다고 자부했고, 그러한 날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뭐라도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였다. 그런데 막상 30대가 되고 몇 해가 지나니, 그 때 미뤄뒀던 고민을 하게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

30대가 되니 전반전이 끝난 기분이다. 단순히 평균수명으로 따진다면야 아직 2쿼터가 진행 중인지 몰라도, 꿈을 기준으로 따져봤을 때 나에게 30대는 분명 하프타임이다. 스코어가 유리한지 불리한지는 잘 모르겠다. 전반전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결정적 찬스를 못 살린 것도 같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우르르 뛰어다닌 기분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땀을 닦아내며 후반전의 전략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어떻게 살 것인가. (129쪽)



하프타임. 절반이 지난 것이라면 다행 중에도 다행일 듯한데, 나는 이미 후반전을 살고 있는 느낌이다. 축구로 따지면 20분을 남겨두고 한 골 차로 지고 있는 상황 정도. 내 꿈을 기준으로 따져봤을 때, 그리고 나의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내가 나를 봤을 때 그렇다. 나는 한 골도 넣지 못한 1:0의 상황. 골을 넣은 경험이 없다 보니 수비에만 급급한 나. 이래서는 절대로 경기에 이길 수 없다. 히딩크 감독이라도 모셔 와야 할 판이다.

‘사막을 횡단할 때도 태양과 별을 보며 방향을 가늠하는데, 30대 여행길에는 나침반 역할을 해줄 무언가가 없었다.’(14쪽) 지금까지의 내 30대 여행길에도 나침반을 찾을 수가 없다.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나도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돈 잘 버는 친구를 보면 나도 얼른 사업 구상을 해야 하는데 하다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를 보면 나도 공부를 조금 더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나 잘난 맛에 살던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의 삶이나 기웃거리는 모습. 참 싫다.

고민이 많을수록 사람은 외로워진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고민은 자기 고민이기에, 어설픈 위로보다는 너만 그런 게 아니야란 말을 건네며 어깨동무를 하고 싶었다. (…) 그렇다고 나만 그런 게 아니군, 이라며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학창실절 겪었던 사춘기가 지금에 와서 아름답게 기억이 나듯, 먼 훗날 오늘의 내 모습을 좋게 기억하려면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치열하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15쪽)


고민이 많을수록 사람은 외로워진다니. 그렇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외로움이 고민 탓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나도 ‘오늘의 내 모습을 좋게 기억하려면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치열하게 노력해야 할 것’, 인데 그것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는데, 뭘 어찌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전에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사춘기’냐고 했다. 어쩌면 사춘기. 아니면 책 제목처럼 「깍두기 삼십대」. 적어도 내가 바라던 어른, 그런 삼십대는 아니다.

취소한 약속으로 생긴 시간에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책을 고르다 「깍두기 삼십대」를 설렁설렁 넘겨봤다. 이것은 글쓴이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만, 책의 용도란 그럴 때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오늘의 두 번째 약속시간까지는 시간을 때워야 하고, 딱 그 시간 동안이면 다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책이 필요했다. 어깨동무를 하고 싶었다는 글쓴이의 의도는 이번에도 그럭저럭 들어맞았다. 약간은 힘이 나고, 시간도 잘 때웠다.


Posted by 헌책방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