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티스토리 툴바





 


음악이란, 그저 인생의 사소한 엔터테인먼트이고 삶에는 음악보다 좋은 게 100만 개쯤은 더 있다.

그러니 어쨌든 살아남아,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자. 쉽진 않을 것이다.(9쪽)


아마도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한 두 번은 종로 세운상가를 다니셨다. 슈퍼마켓에서 얻은 빈 상자를 이리저리 재단해 집에서 고친 라디오나 전축 같은 걸 짊어지고 다니셨는데, 그것이 소일거리였는지 취미생활이었는지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에 러시아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젊은 시절 다녀오신 사진을 본 적 있는데, 나는 그것으로 할아버지의 기술이 꽤 좋다고 짐작했다. 다 고친 라디오나 전축을 테스트하다 보니 집에는 늘 음악이 흘렀다.

할아버지는 종종 나를 시내에 데리고 가셨다. 누구에게나 그럴 텐데, 나에게도 그것은 아주 큰 재미였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때가 맞으면 짜장면을 먹는 대단한 행운도 누렸다. 세운상가 주변 골목골목을 다니는 것도 퍽 흥미로웠다. 유리 진열대 너머로 보이는 작은 기계들이 그렇게 멋있고 신기할 수 없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워크맨. 누구는 ‘마이마이’라고도 하고, ‘카세트플레이어’가 맞는 단어인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나는 그 앞에서 입을 헤벌린 채 구경하곤 했다.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건, 도대체 내가 어디서 워크맨을 살 돈을 얻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느 날 무슨 일로 나에게 거금이 생겼고, 나는 전부터 돈이 생기면 워크맨을 살 거라고 할아버지께 말하곤 했던 바를 실행했다. 내 생에 최초의 나만의 음악재생기. 후로 나는 몇 개의 워크맨과 몇 개의 MP3 플레이어를 더 샀다. 리모컨 기능이 더해졌고, 저장용량이 커졌다. 수업시간에, 혼자 걸을 때, 버스 안에서, 가끔은 눈을 감고, 가릴 것이 없이, 들을 수 있을 땐 언제나 음악을 들었다.

삶 중에 기억에 남는 음악이 있기도 하다. 대학교 2학년 때 혼자 강화도에 가며 들었던 라디오헤드의 어떤 곡, 군대에서 야간근무를 서며 흥얼거렸던 퀸의 어떤 곡 등등. 헤아리자면 언급하지 못한 곡이 행여 서운할 까 헤아릴 수 없는, 그런 노래들이 있다. 그 때 그 노래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훨씬 힘이 들었거나 지루했을 것이다. 그 노래들을 들으며 나는 공감했고,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삶의 소중한 것에 음악을 반드시 포함시킨다.

그런데 차우진은 ‘음악이란, 그저 인생의 사소한 엔터테인먼트이고 삶에는 음악보다 좋은 게 100만 개쯤은 더 있다’고 한다. 음악보다 좋은 게 무려 100만 개쯤. 정말로 그렇다면 삶을 그만두어야 하는 날 엄청나게 슬프겠다. 이렇게 좋은 게 음악인데, 그보다 좋은 게 100만개 쯤이나 더 있다니. 죽어도 못 죽겠다. 그래서 살아남아야 한다. 내 삶의 가치는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에 있는데, 차우진도 같은 말을 한다. 그래서 ‘쉽지 않을 것이다’라는 그의 말이 내게는 아주 심각한 말이 된다.

기실 그렇다. 쉽지 않을 것이라는 그 말. 아니, 정말 어렵다. 언젠가 힘이 됐던 델리스파이스(Deli Spice)를 들어도 힘이 나지 않기에, 럼블 피쉬(Rumble Fish)를 꺼냈는데 여전히 어렵다. 니아(Nia)의 목소리에 조금 힘을 얻는가 했는데, 아직 발표된 곡이 많지 않아 아쉽다. 어차피 헤어나지 못할 바엔 차라리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자는 심정에 브라운 아이즈(Brown Eyes)를 들으니, 수시로 숨이 턱턱 막혀 마음대로 먹지도 못하게 됐다.

어떤 노랫말은 작곡가가 참 많이 힘들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제아무리 글짓기에 능한 사람이라도, 아무런 감정 없이 그런 가사를 쓸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감정을 겪는다는 게 참 많이 힘들다는 것을 공감하기에. 그래서 어떤 노래는 듣다가 슬픈 웃음이 나기도 한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댁도 참 힘들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 그 곡이 갑자기 더 좋아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보다 좋은 게 100만개 쯤은 더 있다니. 그래서 살아야 한다니. 그런데 쉽지 않을 것이라니.

뭐냐...


Posted by 헌책방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