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흐리다. 어제도 그랬다. 그 전날은 바깥 날씨가 어땠는지 모른다. 내가 우울한 건 그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고, 없어야 하고, 없길 바란다. 화가 난 것도 있다. 다름 아닌 나에게 화가 난다. 미숙한데다 못되기까지 한 내 자신에 대해 화가 난다. 또 불안하여 심장이 시도 때도 없이 철렁하고, 간밤에 식은땀이 나 오들오들 떨었던 것을 생각하면 어딘가 큰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어디로든 달아나고 싶었는데, 이만저만한 이유로 그러지 못하여 이러고 있다.
무진기행(霧津紀行)
달아난다면 그 곳이 어디였을지 나는 안다. 이러한 비슷한 마음일 때마다 가던 그 곳 외에 다른 곳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으니, 만약 달아났다면 그 곳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 곳을 얘기한 적이 있었는지, 한번은 누가 내가 달아난 그 곳을 용케 찾아온 적이 있었다. 역시 비밀이라는 것은 한 사람에게라도 말하는 순간, 비밀이 아닌 것이 된다. 그러나 나는 이미 누설한 비밀이라고 하여,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 곳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야 한다.
그 곳에 간다 해도 ‘새출발’ 같은 걸 기대하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도망이다. 영원한 도망이 아닌 바에야, 그 도망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저 잠시나마 그 곳에 처박혀 있고 싶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지우지 못하는 한, 그 도망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고, 잠시나마 그 곳에 처박혀 있고 싶은 것이다.
속물.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는 진심이고, 나의 진심을 재단하는 타인은 모두 속물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닌지. 이런 그리고 저런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며칠째 잠을 못자서 인지, 어제는 자정이 넘기 전에 눈이 스르르 감기는가 싶더니, 역시 밤새 뒤척임을 반복했다. 소나기를 맞은 것처럼 온몸이 흠뻑 젖은 채 잠에서 깼다. 내 체온이 닿지 않은 곳은 서늘함 마저 감도는 이불 속에서 그렇게 식은땀을 쏟았던 일이 몇 년 전에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