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 장애라는 말만 들어봤는데, 책을 통해 공황 발작을 알게 됐다. 증상이 낯설지 않아 인터넷을 찾아봤다.
한동안 백수였을 때 비슷한 증상을 겪었다. 그 전과 그 후에는 그런 느낌이 없는 줄 알았는데, 주말에 불현듯 아주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올랐다. 잊고 싶은 기억, 극복하고자 수없이 노력했던 시간들. 어렸을 때 자란 환경이 사람의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나로서는 잊은 줄로만 알았던, 극복한 줄로만 알았던 그 기억이 심한 공포로 다가왔다. 그리고 또 생각해 보니, 최근에도 숨이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 적이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나한테 이런 증상이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창피하다. 알량한 남자의 자존심이 아니다. 나는 아픈 것이 그냥 싫다. 내 주변 사람이 아픈 것도 싫고, 특히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아픈 것은 더더욱 싫다. 그런데 나의 감정으로 인해 공황 발작인지 뭔지 모를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고, 다른 사람이 힘들어 하는 것 같아 괴롭다. 어렸을 때의 잊고 싶은 그 기억들을 극복하고자 감정이라는 것이 들어오는 길에 아주 높고 두꺼운 벽을 쳤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그 벽이 무너져 감정이 들어와 버렸다.
감정이 없는 내 자신이 싫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의 일기장에 ‘이성이 감성을 지배하기 전에’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정신병적인 착각일 수도 있겠다. 나는 감정을 완전히 잃었다고 여겼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는 메마른 상태. 싫기도 했지만, 그게 상처를 받지 않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감정이라는 쓸데없는 것에 구속되어 힘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힘이 든다. 한편으로는 나도 사람이구나, 감정 없는 인조인간은 아니구나, 싶다.
해결하지 못한 유아기적 앙금. 이것은 나이에 상관없이 특정한 상황이 되면 불쑥 나타나는 모양이다. 그 앙금을 없앨 힘이 나는 없다. 그러자면 나는 다시 태어나 새로운 유아기를 보내야 하는데, 그건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결국 나의 이러한 성격의 결함은 전적으로 내가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나의 짐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 힘들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사실을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해서는 안 되고, 나는 극복해야 할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한때 나는 대책 없이 긍정하는 내 성격을 단점으로 여겼다. 요즘 기분전환을 위해 듣는 니아(Nia)의 곡 중에 <Break Out>의 가사처럼 ‘나 잘난 맛에 살던 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가 된 것 같다. 다 내 잘못이다. 이것을 책은 일종의 트라우마 탓이라고 한다. 까맣게 지운 줄 알았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애초에 트라우마가 생긴 상황, 살다가 그런 상황이 오면 어김없이 그 트라우마가 도지는 것이다. 그것은 유아기적 앙금이며, 그래서 생긴 유아적 의존심 때문에 공황 발작에 이르게 된 건가 싶다.
누구나 겪는 불안이고, 불안할수록 더 빛나는 삶이라고 책은 말한다. 불안을 온전히 껴안으라 한다. 불안 심리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만들어나가는지 논리적으로 접근해 불안 심리를 다스릴 수 있는 지혜까지 알려준다, 고 책에 쓰여 있는데, 나는 두 번이나 읽었는데도 왜 그 지혜를 찾지 못했을까. 그건 모두 불안 때문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읽고 있는지, 불안할 때는 알기 어려운 모양이다. 고로 이 책은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읽어야 하나 보다. 그러나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이 책을 읽을까. 따라서 이 책은 누구나 불안하니까 두려워하지 말라는 정도가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