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하게 살다가 삐거덕거리는 순간. 그 순간들이 연속되어 태엽이 느슨해진 괘종시계처럼 힘이 빠질 때. 그런 때는 누구나 있다. 태엽을 바짝 조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멈춘 것만 같은 시간 속에 하염없이 빠질 때는 누구나 있다. 나 역시.
선배를 찾아 갔다. 좋아하는, 존경하는, 믿고 따르는 선배다. 지난 봄에 이른바 귀농한 선배다. 회사생활을 하던 때, 선배는 종종 귀농을 얘기한 적 있다. 누구나 그런 이상적인 꿈을 갖고 있다. 나는 그것을 선배의 이상적인 꿈으로 여겼다. 그런데 선배에게는 그것이 그저 꿈은 아니었던 것이다. 흙과 함께 반갑게 맞아주던 선배의 모습이 말 그대로 감동이었다.
한 4년, 나는 선배를 직속상사로 모시며 일했고, 이제는 한없이 좋은 선배다. 고분고분 말 잘 듣고, 적당히 눈치를 보며 기분을 맞춰주는 그런 후배가 나는 아니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을 하기는커녕, 술잔을 내리치며 불만을 늘어놓던 그런 후배였다. 그런 나에게 삼촌처럼, 형님처럼, 그리고 친구처럼. 그랬던 선배가 바로 이 선배다.
선배의 우려와 반대를 뒤로 하고 백수가 되었을 때, 나는 또 염치없이 선배에게 술을 졸랐다.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할 때, 선배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답을 묻곤 했다. 선배도 알고 나도 안다. 선배가 제시하는 모범답안을 내가 곧이곧대로 듣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래도 그렇게 힘이 들 때 선배의 목소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 큰 힘이 됐다.
그 시절 선배에게 책을 한권 선물했다. 『숲에게 길을 묻다』. 그 시절 선배도 힘든 일이 있었다. 아직도 그것에 마음을 쓰고 있는 걸 보면, 그 때 선배가 얼마나 마음이 쓰렸는지 알만하다. 선물한 책을 선배가 읽었는지, 읽었다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됐는지 알 수 없다. 나는 다만 선배를 응원하는 사람이 많고,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라는 징표로 책을 선물했다.
요즘 내가 사는 게 좀 그렇다. 백수생활을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는 하나, 힘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회사를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몇 번이나 하고 나서야 세상과 다르게 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제는 그런 세상에 얼추 맞춰 살고 있다. 적당히 편하고 적당히 보기 좋은 그런 삶. 이런 삶에도 행복은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살다보니 그럭저럭 그랬다.
그랬던 삶이 또 말썽을 부린다. 살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 중에 몇 개의 아쉬움과 몇 개의 후회로 어깨를 늘어뜨리는 날이 있다. 태엽 풀린 괘종시계처럼 멍하니 서 있을 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밥벌이에 전전긍긍하면서도 정작 마음은 텅 비어 힘이 빠질 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배에게 물어보려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선배의 기분을 잡치고 싶지 않았다.
캄캄한 밤 서울로 돌아 길. 가슴이 벅차고, 또 텅 빈 것만 같았다. 고개 숙인 벼 너머로 푸르게 펼쳐진 하늘, 후끈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탱글탱글 여물어가는 방울토마토, 시골 냄새 그득한 그 길을 지나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슴이 벅차오르더니, 딱 그 만큼 텅 비어버린 마음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별 기대 없이『숲에게 길을 묻다』를 두 번째 읽다가 혹시나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했는데, 이것은 내가 스스로 찾아야 할 답이라는 것만 새삼 확인했다. 숲은 그러하다. 태어나고, 다투고, 상처받고, 그 상처를 다루고, 꽃을 피우고, 사랑하고. 숲은 누구에게도 그것을 묻지 않고도 그것을 안다. 숲은 서두르지 않고 아주 오랜 시간에 그것을 체득했다. 나 또한 그저 차차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라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