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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름만으로도 부담스런 그 이름의 칼 마르크스가, 그런데, 사랑은 주는 게 아니라 받는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와. 무슨 생각을 해야 하나. 역시 사랑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인가 보다.

“만일 그대가 사랑을 하면서도 상대방의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다시 말하자면 그대의 사랑이 사랑으로서 발현되면서도 상대방의 사랑을 산출하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대의 삶을 표현했는데도 이를 통해 그대를 사랑받는 인간으로 전화시키지 못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무력한 사랑이요 하나의 불행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권의 책』 337쪽 중에)


사랑에 빠질 때,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변할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사랑을 하면, 누군가를 좋아하면 어떤 느낌이어야 할까. 『방황의 기술』이란 책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랑에 빠질 때,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변할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못한다, 고 말해야 한다. 사랑에 빠져 어떻게라도 변한 후라야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텐데. 그런 짐작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고 말해야 한다.

사랑에 빠진다는 말부터 따져봐야 한다. 사랑에 ‘빠질’ 때와 사랑에 ‘빠졌을’ 때는 다르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누구나 그럴 수 있다. 잘 가다가 발을 헛디뎌서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일방적인 사랑, 시쳇말로 짝사랑이다. 『방황의 기술』이 말한 ‘사랑에 빠질 때’는 이 때를 두고 한 말인지가 확실치 않다. 요즘 내가 모든 일에 그렇듯, 그 의미를 정확히 모르겠다.

어쨌든 만약 이 때를 두고 한 말이라면, 사랑에 빠질 때 과연 어떨까. 시도 때도 없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없이 24시간 한 사람이 생각날까. 눈에 안 보이면 보고 싶고, 보면 말 걸고 싶고, 말하다 보면 웃음이 나고. 뭐 그럴까. 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평소 안 하던 짓을 하고, 평소 하던 짓을 안 하고. 그럴까. 어떤 사람으로 변할지 짐작도 못할 거라는 말은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일까. 모르겠다. 도대체가 요즘은 생각이라는 것이 없다.

불행일까 행복일까

어떤 사람이 웃음이 나게 한다면, 그건 무력한 사랑 하나의 불행인지도 모른다. 칼 마르크스의 말은 그래서 참 신선하다. 사랑은 주는 게 아니라 받는 거라니. 만약 이에 대한 부연설명이 없었다면, 이 말은 전혀 신선할 것이 없고,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말을 이어 들으니, 과연 그렇다. 짝사랑, 특히 드러난 짝사랑은 무력한 사랑이요 하나의 불행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말에 동감하고 나니, 정말로 무력해지고 불행에 빠질 듯하다. 상대방의 사랑 없는 일방적 사랑.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데,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래도 낫겠다. 빤히 눈에 보이는 좋아하는 상대방의 무관심 또는 냉대는 정말로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미 사랑을 표현한 당사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암흑, 차라리 지옥에 빠진다.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미안하고, 그 마음을 접지 못해 미안하다. 이것은 사랑이 아닌 지옥인 것이다.

지옥을 지나 사랑에 안착하면, 그러니까 사랑에 ‘빠졌을’ 때, 그 때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변할지 짐작하지 못한다는 것에는 의심이 없다. 일방적 사랑은 혼자 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방의 사랑을 산출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나의 변화는 그러므로, 상대방을 통해 이뤄진다. 그러니 이것이야말로 감히 짐작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이 때의 웃음은 생기 넘치는 행복의 웃음이 아닐까 싶다. 한 사람에 의한 그 웃음은 어떤 웃음인지, 알고자 하는 것은, 불행일까, 행복일까.


Posted by 헌책방IC